정의의 여러 원칙



동등한 인간존엄성의 보장이라는 대원칙에서 출발하여 다음과 같은 정의원칙들을 구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 필요 충족의 원칙: 개인으로서 시민으로서 기타의 권리들과 자유들을 행사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기본적 필요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평등분배 우선성 추정의 원칙: 모든 사회적 재화들은, 불평등한 분배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한 일단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권리평등분배의 원칙: 기본적 자유 및 권리들은 최대한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중요한 정치적 권리들을 행사할 수 있는 공정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자유교환의 원칙: 공정한 조건 아래에서 자유로운 선택과 거래에 따른 분배는 정당하다. 

공정한 기회평등의 원칙: 재능과 의지력이 유사한 사람들에게 교육·직장·승진·포상과 같은 재화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가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한다. 

  (⑤-1) 비슷한 재능과 근면성을 가지고 있는 개인들은 성별이나 인종·민족·출신 등과 무관하게 교육·직장·전문기술·승진과 같은 중요한 재화들에 대하여 평등한 기회가 부여되어야 한다. 

  (⑤-2) 과거에 국가권력과 법을 통하여 매우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음으로 인해 현재의 사회적 성취 가능성에 필요한 수단을 활용하는 데 불리한 지위에 있는 사회적 집단에 속하는 개인들에 대한 우선적 대우는 그것이 비례성의 원칙에 합치하는 경우에는 정당하다. 

최저생존의 보장원리: 사회경제적 기본재화들은 모든 시민들에게 인간다운 최저생존이 보장될 수 있도록 분배되어야 한다. 

정당한 불평등대우원칙(차등대우원칙):

  (⑦-1) 다른 사람들보다 능력이 있는 자에게 권력과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그 사회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적절한 수단이 되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사회적 최소수혜자에게 더 큰 혜택을 가져다주는 경우에 불평등한 분배는 정당하다. 

  (⑦-2) 사회경제적 재화들의 불평등분배가 그 이전의 상태보다 사회적 최소수혜자에게 더 큰 혜택을 가져다준다면 잠정적으로 불평등한 분배는 정당하다. 


이러한 정의원칙들은 중요한 사회적 재화들을 분배할 때 원용될 수 있는 기준들이다. 이 중에서 자유지상주의적 정의론이 받아들일 만한 정의원칙과 평등지향적 정의원칙들이 수용할 만한 정의원칙들이 일치하지 않는 것도 있을 것이다. 또한 정의원칙으로서는 타당할지 모르겠지만 법적인 영역에서 권리로 보장될 정도는 아닌 정의원칙들도 있을 것이다. 정당한 분배기준이라고 해서 그 기준대로 분배할 의무를 타인과 국가에 부과할 수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즉, 사회정책적 관점에서는 타당하지만 권리로 평가하기에는 부족한 정의원리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론상의 차이들이 권리론과 인권론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점을 낳게 되는지, 그 사상적 배경은 무엇인지, 권리이론상의 쟁점은 무엇인지는 앞에서 살펴본 권리와 인권의 주제와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다. 

우리는 앞에서 정의의 개념과 그 기준, 그리고 그에 따른 다양한 정의론들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정의는 인간관계에서 상호 간에 정당한 몫을 돌려주는 사회윤리적 원리이고, 그것은 그 적용영역과 적용의 방식에 따라 여러 가지 차원에서 분류해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정의의 실질적 기준에 대하여 근본적인 회의가 있을 수 있다. 즉 정의의 원리는 모두 형식적인 것이어서, 어떤 실질적인 내용을 담고 있지 못하며, 따라서 결국 정의는 공허한 형식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는 특히 켈젠의 정의비판에서 절정에 이른다. 그는 정의의 여러 원리들을 하나하나 분석해 가면서, 정의란 '아무런 내용도 없으나, 동시에 어떠한 내용도ㅗ 받아들일 수 있는', '동어반복적 개념유희에 불과한', '어떠한 종류의 실질적 원리도 내세울 수 있게 하는', '정반대의 가치판단도 배제하지 않는', '내용 공허한, 전적으로 무가치한'  그야말로 공허한 형식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면 이러한 극단적인 비판에 우리는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비판에서 지적된 것처럼 정의의 원칙에는 모호하고 형식적인 부분이 많다. 즉, '그의 것'이 무엇이며, 또 '평등'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는 것인지에 대한 대답은 빈약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의의 공식이 전적으로 공허하다고 몰아붙일 수는 없다. 우선, 정의의 공식은 이익과 부담의 분배에서 형평을 기한다는 점에서 이미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특히 그 원리를 부인했을 때의 결과를 보면 알 수 있다. 만일 정의의 공식이 전적으로 공허한 것이라면, 그 부정 또한 전적으로 공허한 결과를 낳아야 할 것인데, 실상 전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각자에게 그의 것이 아닌 것을 주라.'라든가, '같지 않은 것을 같게 다루고, 같은 것을 차별하여 다루라.'라는 주장이 얼마나 우리의 도덕적 직관에 어긋나는가를 볼 때 확인된다. 더 나아가 정의의 형식성, 즉 형식적 정의의 원리가 비록 내용적으로 빈약하다고 해도 거기에는 이른바 '보편화 가능성' 원리라는 법과 윤리의 제일 덕목이 내재하고 있다는 점을 소홀히 하면 안 된다. 이를테면 '동일한 범주의 존재는 모두 동일하게 대우한다.'라는 형식적 정의의 요청은 행위의 일관성과 자의의 배제라고 하는 중요한 덕목을 가르치고 있다. 

물론 정의의 원리에 실질적 성격이 부족하고, 또 그에 대하여는 일정한 원칙이 있을 수 업다는 점은 겸허히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의에 대한 회의론이나 허무주의로 기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 법과 정의가 논의되는 곳에는 반드시 분쟁이 존재하고 있다. 상호 다툼이 있기 때문에 그 종결을 위하여 재판이 있고, 재판의 기준을 위해 법이 존재하며, 그 법이 따라야 할 이념으로 정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참으로 세상만사는 크고 작은 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연속과정이라고 볼 수 있따. 정의의 과제는 바로 그러한 분쟁을 중재하여 상호 화해시키고 그렇게 함으로써 참된 평화를 도모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한 정의의 과제는 단지 추상적으로만 전개될 수는 없다. 요컨대, 우리 앞에 펼쳐지느 수많은 분쟁들 가운데, 과언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 가장 구체적이고도 주체적인 질문으로 떠오른다. 




발췌출처: 이상영·김도균, 『법철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14, 370-373. 






시민불복종의 정당화 판단기준


이제는 시민불복종을 정리할 단계이다. 이를 위한 마지막 질문은 '과연 시민불복종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하는 문제이다. 어떤 법불복종행위가 시민성·공공성·비폭력성·양심성의 요건을 충족하면 곧바로 정당한 시민불복종이 되는가? 그리고 시민불복종이기만 하면 언제나 정당화되는 것인가? 아니면 시민불복행위들 중에서 특정한 조건들을 충족하는 시민불복종행위만이 정당화되는가? 개인들이 또는 시민단체들이 자신의 법불복종이 시민불복종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이 물음들은 상당한 실천적 중요성을 갖는다. 시민불복종 주체들은 자신들의 법불복종이 정당하다고 주장할 터인데 과연 어떤 기준에 의해서 그 정당성 주장이 판단되어야 하는가? 

시민불복종을 수행하는 경우 정당한 법불복종의 기준을 마련해 보도록 하자. 

1. 법제적·법적용·법집행의 절차적 조건을 충족하는 한에서 법질서는 일단 정당한 권위를 가지며, 전체 법질서가 정당한 권위를 가지는 한 시민들은 구체적인 악법들에 대하여도 일단 복종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그 악법이 부정의한 정도가 극심한 경우에는 불복종하는 것이 정당하다. 

2. 어떤 법률이 극도로 부정의하다는 것은 그 법률이 인간존엄성의 핵심요소를 부정하는 경우이다. 동등한 인간존엄성 원리를 명백하게 침해하여 기본적 인권을 완전히 훼손하는 법률들에 대한 법불복종은 즉각적으로 정당화된다. 

3. 극도로 부정의하지 않은 법에 대해서는 일단 복종하는 것 역시 시민의 덕목이다. 그러나 정의이념을 극도로 침해하여 합리적 평등과 합리적 차별을 무시하느 법률이나 정책이 입헌민주주의 헌법의 핵심정신을 근본적이고 반복적으로(계속해서) 훼손하고 있는 상황에서, 
(1) 문제의 악법이 정치과정을 통해서 조만간 개선되리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고, 
(2) 제도적으로 설정된 설득 및 구제절차의 방법을 통해 정치권력의 의사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조만간에는 미미한 경우(보충성의 원칙)에, 
(3) 법불복종이라는 수단의 실현 방식이 필요하고도 적절하다면, 이런 경우에 법불복종은 정당화된다. 

4. 법불복종이 필요하고도 적절하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기준을 충족시키는 경우이다. 
(1) 비례성의 원칙을 충족시키는 경우: 불복종의 목적이 입헌민주주의 헌법에 내재하는, 훼손된 정의와 공공선(公共善)을 회복하는 데 있으며(불복종의 이익이 그 피해보다 큰 경우), 
(2) 공공성의 원칙을 충족시키는 경우: 공적이고 공개적인 비판 및 불복종의 방식으로 이루어지고(방법상의 적절성), 
(3) 불복종자의 양심성과 도덕성이 갖추어진 경우: ① 무조건적 처벌감수의 태도를 보이거나 ② 재판을 받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의사를 보이거나 또는 ③ 그 불복종행위에 대한 사회적 평가과정에서 광범위한 합의와 동의를 받지 못할 정도로 정당화되지 않는 경우에는 처벌까지도 감수하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과 같이, 진지한 자세를 통해 악법르 교정하고 개선하겠다는 의사가 있는 경우이다. 




이상의 내용은 다음 책에서 발췌: 이상영·김도균, 『법철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14, 179-181. 


 

민주적 정의의 실현으로서의 시민불복종



일반적으로 시민불복종은 '어떤 정부의 정책이나 법이 매우 부당하여 인간존엄의 가치와 근본적 정의원리 및 공공이익을 계속해서 심각하게 훼손한다는 점을 사회구성원 전체에게 알리면서, 그 정책이나 법을 변경 또는 폐지하려는 목적에서 양심적 진지성을 가지고 다수의 정의감에 호소하여 실정법을 공적이고,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위반하는 정치적 행위'로 풀이되고 있다. 좀 더 상세히 살펴본다면 법불복종으로서의 시민불복종은 시민성·공공성·비폭력성·양심성 등의 네 가지 요건들로 구성된다. 

(1) 시민성

시민불복종의 요건 중 첫 번째는 법불복종의 주체에 관한 것으로서 '시민성'(civility)이다. '시민'이란 단순한 '사적 개인'이 아니라 민주적인 정치적 공동체의 구성원, 즉 법적·제도적 차원에서의 민주적 의사형성의 결함을 인식하고 공론의 장에서 개선하려는 의식을 가진 개인 또는 단체를 말한다. 시민성이란 이러한 시민으로서 가져야 하는 덕목과 관련된 개념으로, 이른바 '시민적 용기'(civil courage)로 표현되는 품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민성' 요건은 구체적으로 공통적인 민주적 확신에 바탕을 둔 조직적 행위일 것(조직성·집단성), 그리고 국가권력이나 시장권력으로부터 독자성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행동할 것(자발성)을 그 내용으로 한다. 


(2) 공공성

법불복종의 공공성(公共性, publicity) 요건은 대체로 다음의 두 가지 요청을 내용으로 한다. 우선 법위반의 방식과 관련된 것으로, 법불복종은 공개적으로 수행되어야 한다는 공개성의 요청이다. 즉, 법불복종자들은 자신들의 주장내용과 그 근거 그리고 실정법위반의 행동을 공중(公衆)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국가권력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천명함으로써 불복종운동의 시위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 예측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공공성의 또 다른 내용으로는 법불복종의 명분이 일반시민들이 정당하다고 받아들이는 공적인 정의원리들에 비추어서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공공적 정당화 가능성'(public justifiability) 요청이다. 법불복종자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불복종행위를 특정한 종교적·정치적 교의나 개인적 윤리적 확신에 비추어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것을 넘어서  공적인 논의를 통하여 그 정당성 주장이 전체 사회구성원들에게 인정될 수 있도록 할 의무를 가지는 것이다 


(3) 비폭력성

시민불복종은 일반적으로 비폭력적인 정중한 정치적 항의로서 받아들여진다. 비폭력적 행위란 고의로(의도적으로 또는 그럴 결과가 발생할 줄 알면서) 개인의 신체와 재산에 대한 해악을 야기하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법불복종행위는 폭력적으로 수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비폭력성의 요건은 톨스토이와 간디에 의해서 주창되었다. 하지만 과연 언제나, 그리고 어느 범위까지 시민불복종은 비폭력적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논란이 많다. 가령 폭력을 행사하는 시민불복종과 비폭력적 시민불복종을 구분하고, 후자는 언제나 도덕적으로 정당화(법적으로도 정당화되는지, 즉 합법적인지 여부는 차치한다면)되지만 전자의 경우는 대부분의 경우에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지는 못한다(그리고 법적으로도 정당화되지 못한다)고 파악할 수도 있다. 즉, 비폭력성의 요건을 시민불복종의 개념요건으로 보지 말고 시민불복종의 정당화 요건으로 보자는 입장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렇게 본다면 시민불복종은 '주로 비폭력적 수단을 사용하는 공공적이고 양심적인 법위반행위'로 풀이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시민불복종은 폭력을 전혀 행사하지 않는 법불복종만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비폭력성 요건은 폭력행위의 개념을 살펴봄으로써 좀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폭력 개념을 단순하게 형법적 관점에서 다루어 시민불복종의 비폭력성을 매우 좁게 제한하는 것은 사실상 민주적 입헌국가에서 시민불복종운동의 가능성의 폭을 매우 축소시킬 위험이 있다. 따라서 폭력 개념에 대한 보다 세밀한 검토를 하는 것이 시민불복종의 합리적 핵심을 살리면서도 민주적 입헌국가의 발전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이 되리라고 본다. 

법불복종과 관련해서 우리는 비폭력적 행위란 ① 순수하게 설득의 전략을 사용하거나 ② 강요의 전략을 사용하며 강제적이고 위협적인 행위이기는 하지만 신체와 재산에 의도적인 해악을 발생시키지는 않는 행위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비폭력적 저항은 약자를 보호하고, 공정한 사회적 협동조건을 보존·유지하고, 부당하게 차별받는 자들을 구제하고, 사회적 부정의를 교정하고, 폭압적정권에 저항할 목적으로 국가의 판단과 선택에 강제를 가하는 위협전략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신체와 재산에 해악을 끼치는 폭력을 사용하지는 않는 투쟁의 방식을 말한다. 


(4) 양심성: '처벌감수자세'와 불복종 동기의 '고급성'

시민불복종의 양심성은 시민불복종 주체들의 동기, 의도와 주관적 의사에 관련된 요건이다. 먼저 우리는 양심성에서 '처벌감수 자세'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법불복종이 시민불복종으로 승격되는 가장 중요한 속성을 꼽으라면 '부당하다고 판단되는 법과 정책의 개선을 목적으로 행한 법불복종의 결과를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자세', 즉 실정법위반으로 인한 처벌을 받게 되더라도 기꺼이 감수하려는 태도이다. 처벌까지도 감수하겠다는 진지한 자세를 통하여 기존 법규범을 교정하고 변화시키겠다는 태도야말로 보통의 범법자와는 다른 시민불복종자의 양심적 진지성을 보여 주는 중요한 속성이다. 

여기에서 처벌감수자세는 일종의 무조건적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민불복종자들이 기꺼이 처벌을 감수하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시민불복종행위에 의해서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되었다고 느끼는 여타의 사람들의 분노나 불안감이 감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민불복종자들의 처벌감수자세는 불복종행위자들이 상대방에 대해서 가지는 존중심, 심지어는 그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기 때문에 시민불복종행위 자체 속에 이미 불복종행위의 동기가 구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이유는, 처벌감수자세는 시민불복종행위자들이 가지는 신념의 깊이를 보여 주기 때문이다. 표면적인 명분만 그렇지 자신의 이익을 실현할 뿐인 위선적인 불복종이거나 과장된 행위가 결코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면서 다른 시민들의 공감을 이끌어 내고 그들의 내면을 변화시킬 수 있는 도덕적 힘을 발휘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시민불복종운동은 개인과 사회가 인간존중의 가치를 체득해 가면서 좀 더 성숙한 개인과 사회로 변모해 가는 '사회적 학습과정'이 된다. 이는 시민불복종을 주창했던 사상가들이 실현하고자 했던 '영성적 사회운동'으로서의 시민불복종운동의 목표이기도 하다. 

셋째, 처벌감수자세는 시민불복종주체들이 가지는 신념의 강도를 판별하는 좋은 심사기준이 된다. '과연 나는 불복종의 결과인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불복종할 수 있겠는가?'를 스스로에게 물음으로써 자신의 도덕적 판단에 대한 겸허함을 갖추게 되고, 이를 통해 시민불복종주체들의 행위는 다른 시민들에게 보다 강한 감화를 주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옳음·정의·공익을 위해서 진실로 자신을 희생하는 ㅐ도를 보인다면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심지어 적이라 할지라도, 도덕적 감화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처벌감수자세는 특정한 법이나 정책에는 반대하지만 자신이 속한 민주적인 정치공동체의 법질서 자체를 존중한다는 법복종의무를 보여 주는 훌륭한 증거가 된다. 게다가 국가가 저지른 부정의(국가책임원리)에 대해서 공동체 전체(공동책임원리)뿐만 아니라 자신도 부분적인 책임을 진다는 겸허함(개인적 책임분담원리)은 시민불복종운동의 도덕적 정당성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음에 우리가 살펴볼 것은 법불복종의 양심성 요건으로 벌불복종 동기의 '고급성' 요청이다. 앞선 처벌감수자세가 양심성의 주관적 요건이라면 동기의 고급성 요청은 그 내용에 대한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단순히 법불복종의 형식만을 판단한다면 경우에 따라서 광신자들이나 극단적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법무시행위와의 차별성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더욱이 광신자들이나 극단적 인종차별주의자들 역시 기꺼이 처벌을 감수하는 자세를 보일 수 있다느 점에서 보면 그 차별성은 더욱 중요해진다. 따라서 시민불복종자들은 '왜 불복종하는가?"라는 동기에 대해 역시 양심적 진지성을 가지고 있음을 설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른바 동기의 '고급성'이야말로 시민불복종이 터무니없는 법무시행위와 차별화되는 본질적 속성이다. 

시민불복종은 사적이고 당파적인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가 아닌 공공선을 위해 법을 위반하는 행위이다. 이는 도덕적으로 정당한 가치들의 복원이나 보존을 목적으로 행해진다는 점에서 다른 법불복종행위들과 차이가 나지만, 법불복종행위자들이 모두 '자신의 세계관·정치관·윤리관'에 비추어 정당하다고 믿는 가치들의 복원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과연 그 타당성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가? 동기의 고급성과 주관적 확신의 타당성은 결국 입헌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정치적 도덕원리들에 비추어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한 정치적 공동체가 입헌민주적 공동체임을 보여 줄 판단기준들은, 동등한 인간존엄성('모든 개인은 자유롭고 평등한 도덕적 능력을 가진 존재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가치)이라는 최고 가치를 실현하는 3대 원리, 즉 민주적 공동체구성원으로서의 평등성(시민적 평등성) 보장, 동등한 자유 보장, 기본적 기회들의 균등 보장을 내용으로 한다. 이 원리들의 구체적 내용이나 실현정책들에 대해서는 의견의 불일치가 있겠지만, 그 원리들의 일반적 내용에 대해서는 대체로 광범위한 이성적 합의가 존재한다. 이러한 이성적 합의는 근대 민주주의 헌법 속으로 편입되어 있으며, 우리 헌법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헌법에 구현되어 있는 민주적 정의의 3대 원리를 심대하고도 반복적으로 훼손하는 정책이나 법률을 교정·개선할 목적에서 수행되는 법불복종이라면 일단 그 동기의 고급성이 있다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은 다음 책에서 발췌: 이상영·김도균, 『법철학』,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14, 175-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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