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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6 23:44

지키다의 다섯 가지 뜻

 



모범적인 플롯, 자연스러운 복선, 배역과 연기, 삽입곡 모두 제대로인 영화다. 굳이 흠집을 내려면 아주 사소한 몇 가지를 지적할
수 있을 뿐, 영화의 완성도에 비추면 전혀 문제가 안 된다. 진짜 문제는 이 정도 영화에 걸맞은 알찬 감상들이 한국어권 네티즌 사이에 많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럼 내가 제대로인 감상평을 써보겠다는 것이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여느때처럼 내 마음대로다.

이 영화의 이야기에서 열쇠말을 꼽으라면 당신은 뭐라고 할 것인가? 나는 이것을 꼽고 싶다. '지킨다'는 것.

한국어 동시 '지키다'의 쓰임은 무슨 대사전까지 꺼낼 것 없이 대략 다음을 포함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명령, 규칙 따위를 지킨다(의무). 둘째 신조, 약속 따위를 지킨다(의리). 셋째 행동, 장소 따위를 지킨다(감시). 넷째 생명, 재산, 권리 따위를 지킨다(보호). 다섯째 사회적 거리, 영역 따위를 지킨다(예의, 존중).

동독 슈타지의 교관이자 심문과 비슬러는 첫째 의미에서 잘 지키는 자다. 그의 경우 이것은 셋째를 수반한다. 1984년 동독이라는 사회의 조건과 개인의 직업이라는 조건에 의해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잘 지키는 비슬러의 눈에 시인이자 극작가 드라이만은 지키지 않는 자로 보인 것이다. 그런데 작전이 진행될수록 지키는 것과 지키지 않는 것의 경계는 흔들린다. 장관 헴프와 그에게 빌붙어 승진하려는 고위간부 그루비츠는 순수한(그런 것이 현실일 수 있다면)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말하자면 이들은 둘째 의미에서 더이상
신념을 지키지 않는 자들이다. 연극 후 칵테일파티에서 헴프는 스탈린을 인용한다. 한편, 드라이만은 자기가 속한 사회에서 무엇인가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자이다. 그에게 동독, 공산주의는 아직 레닌으로 표상된다. 브레히트의 서정시, 선한 사람의 소나타는 어찌 보면 '정말로 잘 지키는' 이들의 이상인 지도 모른다.

그런데 너무 잘 지키는 것은 잘 지키지 않는 세상에서는 지키지 않는 것으로 도착된다. 연출가가 연출가로 살지 못하는 상태, 달리 말해 소외된 상태에서 절망한 예르스카는 이 도착된 세상을 바로잡아 보도록 드라이만을 자극하게 되고 그를 위해 비슬러는 네번째 의미의 지키기를 실천한다. 그 지키기에는 크리스타도 포함된다. 크리스타는 첫째, 둘째, 넷째 의미의 지키기 사이에서 가장 괴로워하는 인물이다. 지켰을 때 지키지 못하게 되고, 다시 지켰을 때 또 지키지 못하고 지키지 못했을 때 지키게 되는, 잘 지키는 비슬러는 첫째, 둘째, 셋째를 지키다가 넷쨰를 위해 첫째를 지키지 않았다. 드라이만은 둘째, 넷째를 지켰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은 다섯째까지 지키게 되었다.

세상에선 으례 뭔가를 지키는 이를 착하다고 한다. 드라이만, 크리스타, 비슬러는 뭔가를 지키지 않고 뭔가를 지켰다. 우리는 이들이 안 지킨 것 때문에 이들이 선하지 않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이 지킨 것은 선한 것이다. 그래서 선한 사람들이다. 선하지 않은 것을 지키는 자는 선하지 않은 자고, 선한 것을 지키지 않는 자도 선하지 않은 자라 할 수 있다. 관건은 선인과 악인의 구별이 아니라 선과 악의 내용인 것이다.

여기서 수수께끼 하나. 우리 사회에서라면 '선한 사람'은 무엇을 지키는 사람일까? 당신은 듣는 귀를 가졌는가?

기타:

타인의 삶에 대한 개입 테마로 연상되는 작품은 <세 가지 색 레드>와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 그리고 <빈집>이 있다. 특히
<레드>는 다시 보고 이 영화와 함께 감상을 써볼까하다가 말았다. 누구 쓸 사람?

그리고 마무리는 섬세한 래스트씬을 보고 떠올려 본 다음 구절로...

"... 생산적인 깊이를 지닌 관계들은 마지막으로 드러난 모습 뒤에서 언제가 가장 취후에 드러날 모습을 예감하고 존중하며, 또한 확실하게 소유하고 있는 것도 매일 새롭게 정복하도록 자극한다. 그러한 관계는 한 사람의 전체를 포괄하는 아주 긴밀한 관계에서도 내면의 사유 재산을 존중하고, 물을 권리를 비밀을 지킬 권리에 의해 제한하는 태도, 즉 부드러움과 자제에 주어지는 보답이다."
                                                                    -게오르그 짐멜, <짐멜의 모더니티 읽기> 중 '분별의 심리학'에서.



2009.2.16. 이전 블로그에 썼던 글.
공교롭게도 그 얼마 후 엄청난 스토킹 사건에 나 자신이 휘말려 버렸다. 범인과 범행 일체는 여전히 미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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